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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대보 해변가에서 생긴 일

역마살인생 2008. 3. 24. 20:41

포항 대보 해변가에서 생긴 일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젊은 그 시절 내가 뭘 믿고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군대생활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오산 30전대 본부 헌병대에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포항 헌병대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나중에 들은 말에 의하면, 내가 포항에 가는 문제를 두고 대대장이 크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즉, 깡패중대 김 상사가 오면 사고를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군 진급에 지장이 있을 테니 안 받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보내야 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포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절대 사고를 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헌병대장에게 제출해야 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바닷가에서 조용히 자숙하면서 군대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우선 사고의 원인이 되는 술부터 끊고 가능하면 사람들을 멀리해 고향이 가까운 이곳에서 제대까지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환경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가 대학(서라벌 예대 연극영화과)을 다니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위생병 특기를 받고 영천 육군군의학교로 전출을 오게 되었다. 그는 친구인 내가 영천에서 가까운 포항 대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왔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 위해 밤새워 술을 마시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바닷가를 산책했다.
그런데 포항 대보 바다에는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바다 밑에 내려가 수십 명씩 짝을 지어 멍게, 소라, 전복을 따고 있었다. 마침 그때가 해녀들이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호기심 많은 내 친구는 큼직한 바위 뒤에 불을 피워 놓고 옷을 갈아입는 해녀들의 모습을 엿보다가 그만 그 해녀들을 감시하는 포항 대보 지방 건달에게 들켜 버렸다.
나는 뒤를 따라오던 친구가 보이지 않아 터벅터벅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는데, 건달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찾아온 내 손님을 감히 누가 손댄단 말인가?’
나는 순간 또 깜빡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공중으로 날아 삼단 옆차기를 하자 그는 개구리가 쭉 뻗어 버리듯 나동그라지며 기절했다.
순간이지만 막상 사고를 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제가 보통 시끄러울 것 같지 않았다. 싸움의 모든 과정을 그쪽 편인 많은 해녀들이 봤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를 재빨리 영천으로 돌려보내고 부대로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새파랗게 질린 헌병대장이 아예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레이숑(전투 때 먹는 미군들의 식량) 한 상자와 양주 한 병을 준비해 놓고 빨리 환자 집에 찾아가 사과를 하라고 했다. 흠씬 얻어터진 그 지방 깡패는 자유당 시절 하늘의 새도 떨어트린다는 국방분과 위원장 하태완(포항) 의원의 조카로, 포항 바닷가를 정부로부터 세내 하 의원의 심부름으로 해녀들을 데리고 와서 수입의 얼마를 받고 대신 해녀들의 신변을 보호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갈빗대 세 대가 부러진 상태에서 국방분과 위원장에게 보고가 올라가자 하 의원이 직접 국방부장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을 거쳐 30전대장, 그리고 포항 대대장에게 오늘 사고 친 놈을 구속해 영창에 넣으라고 엄명을 내렸다.
결국 대대장과 헌병대장이 하도 안타깝게 매달리는 통에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레이숑과 양주 한 병을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다음날 포항 큰 병원으로 후송된다고 했다. 나보다 8세 정도 위인 그는 끙끙거리며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내 따귀를 한 대 힘껏 때렸다. 나는 묵묵히 맞고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대장과 헌병대장의 모습이 떠올라 싹싹 빌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그래. 너 멋있는 놈이야. 너, 앞으로 내 동생 해라.”
그는 내 등을 탁 치면서 내 앞에 놓여 있는 양주병을 집어 들더니 양주 한 병을 병째 꿀꺽꿀꺽 다 마셔 버렸다. 마침 그의 어머니가 사발에 약을 담아 들고 들어왔는데, 온 방안에 똥 쿠린내가 진동했다. 사발에 담긴 약은 다름아닌 똥물이었다. 뼈 상한 데는 똥물이 좋다고 했다나…….
술기운 때문일까. 그는 똥 한 사발을 한입에 거뜬히 다 마셔 버렸다. 우리는 형님 동생 하면서 이번 사건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로 하고 헤어졌다.
부대로 돌아와 보니, 예상치 못한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날 저녁 새로 신설되는 제주도 모슬포 헌병대(미군들로부터 인계받음)로 전출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방 건달이나 심지어 우리 헌병들까지 내가 사고를 쳐서 좌천을 당했다고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설되는 제주도 모슬포 대대장이 깡패중대 김 상사가 그렇게 사고를 친다니 내가 버릇을 고쳐 사람 만들 테니 제주로도 보내라고 해서 계획적으로 전출시킨 것이라고 했다. 공사 2기 출신의 P소령님은 야당 성향이 강한 대쪽같은 성격의 경북 김천 출신으로 20여 년 전 내가 목사가 되기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코미디 같은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과연 깡패중대 김 상사의 버릇이 고쳐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