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 말리는 오류동 특수부대원
백령도에 배치되어 작전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본부로부터 명령이 하달되었다. 새로 생기는 특수부대 낙하산 1기생으로 입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낙하산 1기생들은 주로 켈로 부대 출신들과 이미 이북을 수없이 넘나들며 첩보활동을 하던 네코 부대 문관들이었다. 모두 병36기로 현지 입대되어 목숨을 이미 조국에 바친 무리들 속에 내가 차출되어 배치된 것이다. 즉, 우리 30명 전원은 앞으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양에 낙하산으로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게 되면 그 정보를 통해 공군력을 동원해 폭격을 하면서 북진한다는 계획하에 만든 부대였다. 이 낙하산 1기 30명 중에는 실미도에서 희생당한 교육대장 김순웅 상사도(실미도 영화 안성기분) 끼여 있었다.
다시는 6․25때처럼 정보가 부족해 후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이 특수부대를 만든 김종길 대위의 작전 계획이었으며 선임하사관으로는 복싱으로 유명한 김병제 상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 특수부대원의 나이는 22세에서 25세 정도였으며 대부분 부모형제 중 누군가는 북괴군에 의해 처형을 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이북 출신이고 경상도 출신은 나를 비롯해 몇 명 되지 않았다.
우리는 개봉동에 있는 C장에서(오류동 첩보부대 안테나가 서 있는 통신소 뒤편 골짜기) 훈련을 받았는데 낮에는 주로 운동을 했다. 태권도, 유도, 칼 쓰는 법, 사격술, 첩보 침투 교육, 낙하산 교육은 주로 관악산 꼭대기에 있는 네코 부대 낙하산 교육장에서 받았고 낙하훈련은 주로 금강 상공에서 했다. 태권도 교관은 지도관 출신인 이병로 사범이었으며 나중에 국기원으로 통합되면서 이사로 계시다가 돌아가셨지만 공사 태권도 교관인 동시에 영등포 문래동에 도장을 운영했던 유망한 태권도맨이었다. 그런데 훈련이 어찌나 심하고 기합이 센지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 선임하사관이었던 김병제 상사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항상 작업복을 줄이 서도록 깨끗이 다려 입고 모자는 육각 작업모에 검은 워커를 신고 바지가랑이를 세 번 겹쳐 입고 바지 뒷주머니에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얇고 검은 까만 가죽장갑을 꽂고 다녔다. 이따금 잘못된 놈이 걸리면 뒷주머니에서 장갑을 끄집어내 끼고는 한 놈씩 보초 초소(초병 한 사람밖에 설 수 없는 좁은 초소)에 집어넣고 기합을 주었다. 그리고 복싱을 하기 시작하면 통 속에 들어 있는 우리에게는 선택이란 것이 전연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먼저 다운되고 만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기를 꺾어가며 훈련을 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기합을 받을 때마다 연대 기합으로 빳다 열다섯 대씩 맞아야 했고, 그것도 엉덩이가 아니라 장딴지 쪽을 패서 피를 철철 흘리게 만들어 팬티 바람으로 오류동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게 만들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무서운 깡패부대원들…….
밤만 되면 김병제 상사는 술이 취해 잠자는 우리들에게 들어와 특수부대원이라면 간이 커야 한다면서 이불을 덮고 자는 우리들의 가슴 한 뼘 반 위로 실지로 권총을 쏘아댔다. 그러니 옆으로 눕는다든가 화장실에 간다고 함부로 일어설 수도 없다. 깜깜한 천막 속에서 언제 김병제 상사가 쏜 총에 맞아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당시도 나는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술만 취하면 내 이름을 불렀다.
“김태원이 건방진 자식…….”
정신이 멀쩡할 때는 한없이 잘해 주다가도 술만 취하면 나를 걸고넘어지며 못살게 굴었다. “오늘 밤 돼지 세 마리 잡아와!” 하면 그것은 곧 명령이 되어 부대원은 푸대에 부엌재를 잔뜩 넣고 3개 조로 나누어 돼지를 잡으러 나가야 했다. 삽시간에 세 마리를 잡아 메고 와서 대령하곤 했다.
“오늘밤에는 닭 열 마리 준비해” 하면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잡을 줄 몰라 아예 닭집에 들어가 잡으려 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소리치며 도망가는 통에 깊은 밤에 온 동네 닭들이 새벽같이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요령이 생기니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오류동을 위시한 인근 동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닭을 도둑 맞았다. 돼지를 도둑 맞았다는 둥 깡패중대 새끼들 짓이라는 둥……. 그러나 함부로 말했다가는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기에 모두 쉬쉬했다.
그토록 열심히 복종하고 하라는 대로 척척 잘했는데……, 벌써 수없이 보초 초소 속에서 터졌는데……. 왜? 그렇게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매일 아슬아슬하게 밤을 지새워야 했지만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오류역 옆에 있는 공터에는 육군 병기창이 있었는데 사고난 새 자동차를 갔다 두는 일이 많았다. 밤만 되면 높은 사람들의 비호 아래 환한 불을 켜놓고 뚱땅뚱땅 새 타이어와 엔진을 뜯었다. 미군들로부터 새로 인수받은 군용 트럭들을 신병들이 몰고 달리다가 사고가 나면 모조리 병기창으로 집결시켰다.
또 기지창 병사들은 밤만 되면 새차와 다름없는 타이어들을 뜯어다가 개봉동 입구에 있는 가게로 가지고 갔다. 거기에는 아예 그것만 전문으로 사가는, 영등포에서 원정을 온 장사꾼들로 득실거렸다.
나는 용돈만 생각나면 동기생 한 사람을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논둑으로 나왔다. 달빛이 대낮같이 밝던 어느 날 다른 동기생은 논둑 아래 적당한 곳에 대기시켜 두고 나는 약 5미터 위쪽으로 가서 역시 논둑 아래에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육군 기지창 병사가 밤새 뜯은 타이어를 굴려 부지런히 상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개봉동 가게를 향해 굴려오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쑥 튀어나가는 것이다.
“너희는 뭐야?”
열심히 굴려오던 타이어를 그냥 둔 채 깜짝 놀라 차려 자세를 취한다.
“신분증 내봐.”
이때 타이어는 계속 굴러가고 5미터 뒤에 대기하고 있던 내 동기생은 자기 앞까지 굴러오는 타이어를 그대로 받아서 계속 굴려 개봉동 상인에게 갖다 주고 돈을 받는다. 그리고 유유히 부대 안으로 들어와 나중에 나에게 돈을 건네주는 것이다.
나는 신분증을 보는 둥 마는 둥하다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그냥 돌려보낸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타이어가 굴러가 처박혀 있을 법한 논둑 밑을 밤새 뒤져 보지만 타이어가 나올 턱이 있겠는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안 병기창에서는 야단이 났다. 하루 밤에 얼마씩은 높은 분들에게 바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깡패중대 김 상사 패거리 때문에 장사를 못해 먹겠다는 결론이 났다. 오죽 했으면 제발 좀 봐달라고 명절 때만 되면 술을 사 가지고 세배를 왔겠는가. 그것도 진짜 상사들이 가짜 상사인 깡패중대 김 상사에게…….
그들도 지금쯤 늙어서 그때 나에게 당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고 있겠지? 그 깡패중대 김 상사가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기절초풍을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