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동 사건 (1)
총기난동 사건(1)―장기 두던 선배를 향해…
동해안 기습 작전 이후 나는 그날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오류동 본부에서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는데, 오호리 파견대의 김태원이 작전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소문이었다.
당시 6006부대(네코 부대)가 철수하면서 공군 2325부대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해상의 섬들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를 말도라는 섬에 배속시켰다(그 해의 작전은 주로 연백 앞바다를 통하는 작전이었음). 새로 생기는 부대이자 임무 또한 막중했기에 소령이 파견대장이었고, 상사가 일곱 명이나 되었으며 대원들은 나를 비롯해 30여명 되었다. 여러 파견대와 부서에서 특별히 차출되어 온 베테랑급의 무서운 첩보부대원들이었다. 오류동 본부에서는 이 30명의 무서운 대원들(이 중 내 동기생은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선배들)이 혹시라도 하극상 난동 사고를 일으킬까 하여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악랄하기로 유명한 상사 일곱 명을 새로 창설하는 말도 파견대로 같이 배치시켰던 것이다.
대원들 중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잡아다 30명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놓고 수상해 보이는 대원을 앞으로 끌어냈다. 일곱 명의 상사들이 빳다로 주먹으로 발길질로 반병신이 될 정도로 패서 쓰러지면 양동이로 물을 퍼부어 가면서 초주검을 만들었다. 겁을 주기 위한 시범인 동시에 경고성 기합이었다.
이 섬은 이따금 인민군들이 넘어와 목을 베어 간다는 북쪽 염전이 빤히 보이는 전방 섬이었다. 밤에는 아예 내무반(콘세트)문을 꼭 걸어 잠그고 보초도 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해야 한다. 모두 30발짜리 탄창이 꽂혀 있는 M2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작전 때마다 내가 필요하다고 불려 나갔다. 한 번씩 배를 타고 작전을 나갔다 오면 아무리 배짱이 좋기로 유명한 나지만 더욱 잔인해지고 사나워지는 것이었다. 왜?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김태원이 작전 잘한다는 소문이 나는 것이었다. 사람 미치고 환장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내 암호는 깡패중대 김 상사였다. 통신대에는 6006부대(네코 부대)에 있다가 현지입대한 L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나를 무척 아껴 주셨던 이분은 나만 만나면 “야! 태원아, 오늘 또 깡패중대 김 상사 찾더라”라고 하셨다. 작전이 힘들고 중요하면 무전으로 꼭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임무를 맡았기에 작전을 나가지만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자주 작전에 참가하다 보니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그렇다고 졸병인 내가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라고 뒤로 내뺄 수도 없지 않은가. 후방으로 가서 마음 편한 군대생활을 하고 싶었다. 밤에 눈만 감으면 적지에서 기습당하던 상황과 죽은 홍 상사의 모습과 죽은 시체를 어깨에 메고 휴전선을 넘어온 장면이 떠올라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면 밥맛도 뚝 떨어져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아프다고 침대에 드러누워 굶은 지도 사흘이 되었다. 이틀까지는 그래도 동기생들과 선배들이 찾아와 빨리 회복해서 작전에 나가야 한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부하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굶고 있는데도 파견대장 L소령이나 일곱 명의 상사는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모두에게 관심 밖의 사람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흘이나 굶어서인지 정신도 희미하고 손도 좀 떨려 왔다.
그날따라 밖에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나리고 있었다. 모두 점심시간인지라 식당으로 다 내려가고 (내무반과 식당의 거리는 약 150미터 정도였다.) 텅 빈 30명 수용 콘세트내무반 복판에 내 야전침대와 사물통이 있고 그 곁에는 총알 30발이 장전된 M2가 있었는데 갑자기 총을 꺼내 실탄을 장전하고 총구를 내 손바닥을 겨누고 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렇게 하면 후방으로 후송시키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며칠을 굶어서인지 안전 장치핀을 어느 쪽으로 향해야 단발인지 연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단발 같으면 “꽝!” 하고 손바닥만 뚫리면 후방병원으로 후송되어 얼마 동안만 치료하면 되지만 만약 핀이 연발로 되어 있으면 한번 쏘는 순간 연속으로 총알이 나가 손이 완전히 달아나는 병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다리 쪽에 총구멍을 겨누어 봤다. 그러나 혹 연발을 쏴서 손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간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 점심식사를 끝마친 병사들이 콘세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보다 2기 선배인 두 대원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올라와 콘세트 입구 침대에 걸터앉아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콘세트가 떠나갈듯 큰 소리로 장기판을 때리면서 “장이야, 궁이야”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원래 장기를 둘 줄 모른다. 천천히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뭐든지 속전속결을 좋아한다. 그 정도로 성격이 급해서인지 당시 유행하던 당구도 칠 줄 모른다. 한번 치면 후다닥 한꺼번에 마쳐야 속이 후련하기 때문에 천천히 끝맺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장기를 두면서 “장이야, 궁이야” 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운 내 귀를 자극해 대니 사흘을 굶어 텅 빈 내 골이 마치 빠개지듯 쾅쾅 울렸다.
“이 자식들아!”
나도 모르게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세워 둔 총을 끄집어 들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던 선배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따따따따따따땅!”
연발이었다. 나는 나대로 연발로 나가는 총의 반동에 의해 홀랑 자빠져 버렸다. 조준은 했으나 손이 떨렸는지 총알이 선배가 앞으로 치켜 쓴 작업모자의 앞창을 뚫고 천장에 총구멍을 내면서 지나갔다.
연발이었기에 일곱 발이나 동시에 나간 것이다. 장기 두던 두 선배는 너무 놀라 침대 밑에 들어가 숨고 식당에서 식사하던 병사들은 깜짝 놀라 모두 콘세트로 몰려들었다. 삽시간에 파견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탄약 연기가 자욱한 콘세트 입구로 일곱 명의 악질 상사들이 몰려왔다.
문에 들어서자 “누가 총 쐈어?” 하면서 훑어본다. 그제야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선배 두 사람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상사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불안해하니, 눈치를 챈 상사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사나운 눈초리로 다시 한번 소리를 쳤다.
“누가 총 쐈냔 말이다?”
벌렁 자빠져 있던 내가 슬그머니 일어나 앉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쐈어.”
“왜 쐈어?”
나는 여유있게 천천히 대답했다.
“총알이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보려고 쐈어.”
“뭐! 이 자식이!”
상사들이 우르르 때리려고 달려들자 나도 질세라 벌떡 일어나 신짝이든 사물통이든 손에 집히는 것은 뭐든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었다. 일곱 명의 상사와 나 한 사람의 대결이었다. 그것도 사흘을 굶은 상태에서 치고 받고 하다가 결국 한쪽 팔이 그들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좁은 공간에서 손을 빼려고 주먹을 친 것이 콘세트 안에 있는 그 강하고 두꺼운 베니이다판 속에 주먹이 쑥 들어가면서 한손을 움직일수가 없었다,그들에게 완전히 두 손이 잡히는 순간 나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