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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난동 사건 (2)

역마살인생 2008. 4. 9. 13:19

총기난동 사건(2)―일주일 만에 다시 말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여러 사람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온 하늘이 사람들의 눈알로 반짝반짝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하다. 죽으면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는데 내가 천당에 온 걸까, 아니면 지옥에 온 걸까? 어찌 이렇게 온 하늘이 눈알투성이란 말인가? 나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리를 꼬집어 봤다.
아픈 걸로 봐서는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눈을 감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기절을 하자 죽은 줄 알고 파견대장으로부터 대원들에 이르기까지, 특히 동기생들은 내 입에 물을 떠넣어 주면서 안타깝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대장님의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아주 서민적으로 생기신 이분은 누가 봐도 특수부대 장교 같지 않지만 아주 유능한 정보장교였다.
“태원아, 이제 괜찮냐?”
그제야 설움이 북받친 나는 마구 소리를 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 약 한 알 갔다 줬어요? 당신들이 내 신상에 대해 관심이나 가져 줬어요?”
파견대장은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당시 파견대에는 구급약마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는 상사들과 병사들에게 나를 잘 도와주라고 부탁하고는 대장실로 올라가 버렸다.
밖에는 가랑비도 멎었고 구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실컷 울었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뒤편 건물 콘세트 통신실에서는 계속 요란한 전파소리가 들려왔다.
“똔스스 똔똔 삐삐비.”
교신소리가 요란하다. 그날따라 소리가 영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 통신대 L중사가 달려와 말했다.
“야, 태원아. 본부에 너 미쳤다고 무전 쳤다. 그래서 네코 부대장께서 특명으로 헬리콥터를 보낸단다. 45분 있으면 도착하니 빨리 준비해라.”
나는 너무 놀랐다. 어린 시절, 시골 우리 동네에는 미친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붙잡아 묶어 놓고는 마구 패든가, 아니면 굵고 뾰족한 침으로 미친 사람 몸 여기저기를 마구 찌르곤 했다. 그런데도 아픈 줄도 모르고 히죽히죽 웃는 미친 사람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무척 무서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미친 사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후방에 나가면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텐데……. 미친 사람은 미쳐서 갇혀 있는 고통도 모른다지만 나는 정신상태가 멀쩡한데 그 고통을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야, 너희들 내가 미쳤냐? 봐라, 멀쩡하잖아?”
나는 일어서서 콘세트 바닥으로 내려가 껑충껑충 뛰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두 다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친다.
“야, 태원이 또 발작한다. 묶어라! 빨리 묶어!”
큰일났다. 이제 변명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변명을 늘어놓다가 꽁꽁 묶여 헬리콥터에 실릴 것이 뻔하다. 포기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45분 만에 미공군 헬리콥터가 도착하고 군의관과 한국통역장교, 승무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다.
간단하게 상황을 묻고 미군 군의관이 진찰을 하더니 정신이 온전치 않아 바로 후송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은 정말 잠깐이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나는 꼼짝없이 미친놈이 되어 후송되고 있었다.
들것에 묶여 헬리콥터 쪽으로 실려가는 들것 뒤로 30여 명의 동료들이 울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미쳐서 떠나가는 전우의 모습 속에서 그들은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나처럼 이렇게 들것에 실려 후방으로 가게 될지 아니면 죽어서 시체로 이 섬을 빠져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휴전선이 가깝기 때문인지 헬리콥터가 떠서 서해 바다 위를 얕게 날아 45분 만에 김포 군용 비행장에 착륙했다. 이미 네코 부대에서 보내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달렸다. 오류동 본부 의무실에 도착하니 밤 9시쯤 되었다. 나 때문에 온 부대가 비상이 걸려 있었다. 게다가 의무실 바로 앞 콘세트(미군 야전용 건물)에서는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방금 자유의 나라로 귀순한 노금석 대위를 심문하느라고 장병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 근무를 하고 있던 의무실장이 나를 진찰하고는 곧 링겔 두 병을 주사했는데 약이 얼마나 좋은지 언제 사흘을 굶었나 싶을 정도로 원기를 회복했다. 게다가 하룻밤을 악몽 없이 푹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훨훨 날듯 몸이 가벼웠다.
이튿날 아침 11시쯤 행정과에 근무하는 병사가 나를 찾아왔다. 행정과장이 나를 호출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이 수고했다고 하면서 최소한 2주 정도는 휴가증을 끊어 주며 푹 쉬고 돌아오라고 하겠지. 등이라도 두드려 주면서…….’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행정과장 앞에 서서 경례를 했다.
“말도 파견대 일병 김태원, 행정과장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
그런데 유도 선수같이 생긴 행정과장 김세권 대위는 인상을 팍 쓰고 나를 사무실 넓은 공간으로 끌고 나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 임마, 말도에서 미쳐서 들어왔어?”
“예, 그렇습니다.”
그는 복싱하듯이 내 오른쪽 아구와 왼쪽 아구를 주먹으로 팍팍 힘껏 쳤다.
“너 몇 기생이야?”
“33기생입니다”
팍팍 또 두 대를 연거푸 맞았다.
“너 최종학교 어디 나왔어?”
대답을 할 때마다 주먹이 두 대씩 날아왔다.
“너 몇 살이야?“
또 두 대…….
맞으면서 생각해 보니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환자가 아닌가?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차려 자세에서 양다리를 펴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반항심 가득한 눈으로 째려보면서 이야기했다.
“여보시오, 나는 환자요. 우리 인간적으로 대합시다.”
“뭐! 여보시오? 인간적으로 대하자고, 이 자식이…….”
이번에는 가슴 얼굴 가릴 것 없이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다. 어찌나 심하게 패대는지 차라리 좀 쓰러져 뻗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때리다 때리다 지쳤는지 유도에서 쓰는 업어치기를 하려고 나를 짊어지는데 내가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나도 운동깨나 한 놈인데……. 몇 번을 시도해도 쓰러지지 않으니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다음에 보자고 한다.
많은 행정과 요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 셈이다. 내 입 안은 터져서 엉망이고 코피 또한 흘려 코주부처럼 되어 있었다. 사무실을 막 나오려고 하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행정과 선임하사관 유인황 상사가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기간사병들 내무반으로 나를 끌고 갔다.
“이 자식! 선임하사관 보는 앞에서 장교에게 고작 그렇게밖에 못하나? 겨우 그 정도야? 빳다 열다섯 대 맞아!”
나는 기합을 넣어 가면서 열다섯 대를 거뜬히 맞았다.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내무반장 최 중사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선임하사관님, 이놈이 정말 그랬어요?. 맛 좀 봐야겠네 파견대만 돌아다녀서 본부 맛을 모르는구먼.”
이렇게 해서 열다섯 대를 또 맞았다. 궁둥이가 완전히 다 터진 것 같았다. 이제는 기합이 다 끝났거니 했는데, 느닷없이 작업모를 삐딱하게 쓴 키가 조그마한 병사 하나가 내무반으로 들어오면서 이 광경을 보았다.
“야, 이 자식! 나는 이놈이 내 선밴 줄 알았네. 내 빳다 맛 좀 봐라.”
이번에도 열다섯 대를 또 때리려는 기세였다. 이 사병은 나보다 2기 선배인데 보일러실 목욕탕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지난번 말도로 전출을 갈 때 본부에서 하루를 묵는 바람에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했는데 찬물만 자꾸 나와 나는 우리 부대 쇼리인 줄 알고(6006부대와 같이 있으며 모두 계급장을 안 달고 다니기 때문에 누가 상사인지 누가 쇼리인지 처음에는 구분이 잘 안 됨), 반말로 “야, 찬물이잖아! 뜨거운 물 좀 더 올려!” 하고 큰 소리를 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선배였던 모양이다.
그 꼬마 선배의 빳다를 세 대째 맞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땀을 닦고 있는 행정과 선임하사관 앞에 가서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선임하사관님, 아시다시피 오늘 나는 너무 많이 맞았습니다. 더 이상 나를 때려서 생기는 일은 선임하사관님이 책임지십시오. 이제부터는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확 박살을 내고 싶었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라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선임하사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대야에 물 떠와서 저애 얼굴 좀 씻겨 줘라!”
꼬마 선배는 빳다 세 대를 때리고 세수를 시켜 줘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의무실에 돌아와 군의관 소령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군의관은 백배 사죄를 했다. 내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당장 네코 부대장과 우리 부대장을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극구 사죄를 했다. 자기 환자를 이 모양으로 만든 군의관의 책임 또한 큰 것 아닌가.
군의관은 행정과장이 화가 난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행정과장은 어제 일찍 퇴근을 해서 말도 총기난동 사고를 모르고 있었단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서 부대장이 “어제 말도에서 후송되어 온 미친 환자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니 행정과장이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고 부대장으로부터 기합을 톡톡히 받게 되었고 그 화풀이를 내게 한 것이었다.
의무실에 돌아온 나는 치료를 받으면서 또 한 번 놀랐다. 군의관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입 안이 터져 엉망이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코와 입술이 심하게 부어 형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순간 마음을 다그쳐 먹었다.
나는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의리만큼은 끔찍하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또한 누가 나를 인정해 주면 그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 이렇게 많이 얻어터지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견뎌냈다는 사실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이 생겼다. 게다가 나는 많은 동료 중에서 작전 잘한다고 조국이 인정해 준 사람 아닌가. 그런 생각이 퍼뜩 떠오르자 나의 안일을 위해 빠져나온 말도로 다시 가서 예전보다 더 열심히 작전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바꾸니 무진장 얻어터진 상태에서도 때린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이 일순간에 없어졌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내 마음이 바뀌어졌으니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본부가 싫어졌고 빨리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말도 일선 파견대로 나가고 싶어졌다. 나는 나를 때린 행정과장에게 빨리 섬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처음에 무척 당황해하고 망설이는것이였다. 내가 섬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서는 네코 부대장과 우리 정보부대 부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나 내가 기합을 받았다는 사실을 높은 분들에게 보고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바뀐 사실을 다 이야기하자, 그는 오히려 부대장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흥분한 상태에서 구타를 하게 되었노라고 정중히 사과를 해왔다. 그리고 말도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인천에서 공작선을 타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작심하고 나왔던 말도 파견대로 되돌아갔다.
말도의 많은 선후배들은 이미 내가 다시 온다는 소식을 무선을 통해 듣고 말도 조그마한 선착장으로 몰려 나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리웠던 얼굴들이었다. 모두들 “야! 김태원이 후방 갔다오더니 살쪄 왔네. 서울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실컷 얻어터지고 왔다는 이야기는 못하고 그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더욱 악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작전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최고로 잔인해지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었다. 때로는 선임자들까지 깜짝깜짝 놀라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