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의 옷 갈아 입는 것을...
해녀들의 옷갈아 입는 것을 훔처보다가
50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그시절 내가 뭘 믿고 그렇게 안하 무인격으로 군대 생활을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오산 30전대 본부헌병대 근무 한달만에 포항 헌병대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렸지마는 그당시 대대장님이 내가 포항에 감으로 인해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즉 강패중대 김상사가 오게되면 또 사고를 칠것이고 그렇게되면 장군진급에 지장이 있을것이기에 안 받겠다는 것이다
그런대도 억지로 보냈기에 할수 없이 보내라고 했다는것이다.
포항에 도착하자말자 곧바로 절대 사고 안치겠다는 서약서를 헌병대장에게 제출해야 했으며 나역시 이기회에 정말 바닷가에서 조용히 자숙하면서 군대생활을 하리라 마음으로 작정을하고 위선 사고의 원인이 되는 술부터 끊고 가능하면 사람들을 피하면서 고향이 가가운 이곳에서 제대까지 해야 겠다고 다짐 하면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환경이 그렇게 놓아두지를 앟었다.
하루는 포항과 가까운 영천 육군군의학교에 내 고등학교시절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든 친구가 대학에(서라벌 예대 영극 영화과) 다니다가 군 입대를 하게되였고 또 위생병 특기를 받고 군의학교로 전출을 오게 되였으며 친구인 내가 가까운 포항 대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오게 된것이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 위해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직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항 대보(한국지도를보면 토끼꼬랑지 같은곳)바다에는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바다 밑에 내려가 수십명씩 짝을 지워서 멍게, 소라, 전복을 따고 있었는데 마츰 그때가 해녀들이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 입는 시간이였든 모양이다.
큼직한 바위 뒤에 불을 피워 놓고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호기심 많은 J 라는 내 친구가 엿보다가 그 해녀들을 감시하는 포항 대보 지방 건달에게 들키고 말었으며 싸움이 붙어 내 친구가 얻어 트지고 있었다.
나는 내 뒤를 딸아 오든 내 친구가 안보이길레 터벅 터벅 가든길을 내려 오다가 건달에게얻어 트지고 는 내친구 모습을 봤든것이다.
나를 찾아온 내 손님을 감히 누가 손댄단 말인가?
나는 순간 또 깜빡하고 말었다.
삽시간에 날아서 삼단 옆차기로서
그는 흡사 개구리가 쭉 뻗어 버리듯이…………………….
기절 시키고말었다.
순간적이지마는 막상 사고를 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보니 문제가 보통 시끄러울 것 같지 읺다. 이광경을 싸음 광경을 그 쪽 편인 많은 해녀들이 증인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친구를 빠리 영천으로 돌려 보내고 나는 부대로 들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새파랗게 질린 헌병대장이 아예 팔짝 팔짝 뛰고 있었다.
레이숀(전투시에 먹는 미군들의 식량) 1Box와 양주 한병을 준비해 놓고 빨리 환자 집에 찾아가서 사과를 하란다.
오늘 얻어터진 그 지방 깡패는 자유당 시절 하늘의 새도 뜰어트린다는 국방분과 위원장 하태완(포항) 의원의 조카인데 포항 바닷가를 정부로부터 세내여서 하의원의 신부름으로 해녀들을 다리고 와서 수입의 얼마씩을 받고 그대신 해녀들의 신변을 보호해 주고 있든중에 당한 사건이였다.
갈빗대 세대가 불어진 상태에서 국방분과 위원장에게 보고가 되였기 때문에 즉시 하의원이 직접 국방부 장관을 통해서 공군 참모총장을 거처 30전대장, 그리고 포항 대대장에게 오늘 사고친 놈을 구속해서 영창에 넣으라는 엄명이 내려 졌다고 한다.
결국 내키지는 않었지마는 대대장님과 헌병대장의 안타까히 메 달리는 부탁을 뿌리칠수가 없어서 레이숀과 양주 한병을 들고 그 집을 찾아 갔다.
그당시 나보다 8세 정도 위인 그 젊은이가 끙 끙 그리며(오늘은 일요일이라 내일 포항 큰병원으로 후송된단다.)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내 따귀를 한데 힘껏 때린다.
나는 묵묵히 맏고 무릎을 꿇었다.
“ 형님 죄송 합니다. “
내키지는 않었지마는 대대장님과 헌병대장의 안타가히 메달리든 모습이 눈에 걸려서 빌수 박에 없었다.
그는 큰 소리로 소리친다.
“ 그래 그래 너 멋 있는 놈이야, 너 앞으로 내 동생 해라. “ 이렇게 말하면서 내 등을 탁 치면서 내 앞에 놓여 있는 양주병을 빼앗아 가지고 꽐 꽐 양주 한병을 혼자 병나팔로 다 마셔 버린다.
마츰 이때 그의 어머니가 사발에다가 약을 담아서 들고 들어오면서 아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야 ! 이 병신 새끼야. 이거나 쳐 먹으라. 쯧 쯧 쯧 이거 이거 못 생긴놈의 자식…………….”
갑자기 온 방안이 쿠린내가 진동을 한다.
사발의 약은 똥물이 였다.
뼈 상한대는 똥물이 좋다고 했다나 ………….
술힘이 였는지는 모르지마는 똥 한사발을 한입에 거뜬히 다 마셔 버린다.
결국 우리는 형님 동생 하면서 이번 사건을 더 이상 확대 시키지 않기로 하고 헤여져 부대로 돌아 왔다.
그런데 이게 왼 일입니까?
그날 저녁에 나는 새로 신설되는(미군들로부터 인계받음) 제주도 모슬포 헌병대로 전출 명령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지방 건달이나 심지어 우리 헌병들까지도 내가 사고를 쳐서 유배 형식의 좌천을 당했다고 소문을 퍼 트린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마는 신설되는 제주도 모슬포 대대장님이 깡패중대 김상사가 그렇게 사고를 친다니 내가 버릇을 곤쳐 사람 만들테니 나에게로 보내라고 해서 계획적으로 제주도로 전출 시켰다고 했다.(그당시 P대위님은 공사 2기 출신으로 야당 기질이 강한 아주 성격이 대쪽 같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서 결국 준장으로 예편 해태 분유 부사장님으로 게셨으며 20년전 내가 목사가 되기전까지 나와 교제가 있었음)
30경보전대 제주도 모슬포 헌병대장으로 중사 계급을 달고 헌병 25명과 함께 도착한 초창기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코메디 같은 제주도에서의 헌병대생활………..
과연 깡패중대 김상사의 버릇이 곤쳐 졌을까?